[신아연의 동행 24] 정운찬과 하루키

신아연 승인 2019.05.30 07:11 의견 0

[플랫폼 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인문예술문화치유공간 블루더스트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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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예찬』, 야구에 관심이 없는 내게는 부담스러운 책이었다. 하지만 저자로부터 직접 받았기에 집어던질 수는 없는 노릇. 숙제를 해 치우듯 읽고 나니, 이번에는 이 책을 몰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이다.

전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자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인 저자가 일생을 통해 야구와 맺은 인연은 마치 천상의 배필을 만난 듯 오묘, 미묘, 현묘하다. 인생의 구비마다, 고비마다 우연처럼, 기연처럼 언제나 그의 곁에는 야구가 있었으니.

 
컬럼비아 대학 취업을 위한 면접 시간. 담당교수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프린스턴에서 박사과정까지 했으니 경제학이야 많이 알테고 미국적인 것을 좀 물어보고 싶어요.” 미국 생활이라곤 채 5년도 안 된 내게 미국적인 것을 묻겠다니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가 내게 첫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야구 좀 아세요?” 마치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시위가 풀리기라도 한 듯 긴장이 가셨다. 내게 야구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던가. 면접은 성공적이었고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동경해 왔던 교수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것을 성취하는 데 기여한 것이, 외로움과 답답함에서 벗어나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몰두했던 야구라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도깨비장난 같고, 필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뚱맞지 않은가. 내 이름을 짓기 위해 아버지가 동네 훈장을 찾아갔을 때 내 사주를 보고는 대뜸 “운이 꽉 찬 놈”이라고 했다더니 –정운찬 『야구예찬』


야구와 운명적 조우를 한 또 한 사람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29살의 평범한 카페 주인이자 야쿠르트 팬이었던 그가 어느 날 야구장을 찾았다. 초록 구장과 푸른 하늘에 하얀 공이 또렷이 떠오르고 공이 방망이에 맞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고 그것을 두 손으로 멋지게 받아낸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그것은 일종의 계시이자,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뀌는 느낌이었습니다. 시합이 끝나자 나는 전차를 타고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렜습니다.”-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정운찬과 하루키처럼 눈부신 성공을 이룬, '운이 꽉 찬'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으랴. 인생이란 야구 경기처럼 엎치락뒤치락,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끝날 때까지는 끝나는 게 아닌 게임이니 오늘도 다만 어제와 같은 마음으로 ‘인생구장’에 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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