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동행 9] 헌 털실과 세 가지 보물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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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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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뉴스 신아연 칼럼니스트]
‘헌 털실 풀어서 짠 장갑’, 어느 독자가 내 글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겨울 채비로 낡고 헌 털옷을 색깔별로 풀 때 저도 옆에 앉아서 당기고 놀았거든요. 풀려나온 빨간 실, 초록 실이 어느 새 엮여져 성탄절 장갑이 되곤 했어요. 경이로왔지요.” 내 글이 섬세한 감성을 지닌 미소년이었던 한 중년 남성의 따스한 추억을 소환한 모양이다.
그 분은 내 글이 다양한 종류의 헌 털실을 풀어서 이것저것을 짜내는 것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헌 털실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푸근하고, 편안하고, 검소하고, 소박하고, 익숙하고, 무던하고, 덤덤하고... 헌 털실은 일상과 닮았다. 내 글은 정말이지 헌 털실처럼 때깔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그 분의 표현이 와 닿는다.
『도덕경』 67장은 '내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로 시작된다. 그것은 ‘자애’와 ‘검약’과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음’이다. 자애는 어머니 같은 마음이다. 어머니는 낳고 기르고 보호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무상으로 자식에게 내어준다. 검약은 아끼는 마음이다. 낭비하지 않고 알뜰해야 진정어린 마음으로 베풀 수 있다. 또한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기에 오히려 앞서게 되어 당당하고 담담하게 살아가게 된다. 이 세 가지로 인해 세상살이에 주눅 들지 않고, 가진 것이 없어도 베풀 수 있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노자는 말한다.
세 가지 보물 가운데 으뜸은 ‘자애’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랑’이다. 맨송하고 밋밋한 일상을 자애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일은 낡은 스웨터를 풀어 알록달록한 장갑을 뜨는 일이다. 헌 털실이, 일상이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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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상 작가의 영상풍경 |
필자 신아연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1년간을 호주에서 지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인문예술문화공간 블루더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영혼의 혼밥'을 연재하며 소설가, 칼럼니스트, 강연자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심리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공저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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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ayou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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