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킥보드 '헬멧 딜레마' 어떻게 풀까?

강동훈 승인 2021.05.23 11:50 | 최종 수정 2022.01.05 18:37 의견 0

지난 17일 점심 시간 서울 강서구 5호선 발산역~마곡첨단단지 먹자골목 구간. 보도를 지나는 행인들 사이로 안전모(헬멧)를 쓰지 않은채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는 젊은이들 모습이 몇몇 눈에 띄었다. 13일부터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를 이용할 때는 헬멧을 반드시 써야 하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지만 이들은 이를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 서울 강서구 발산역 입구에 내팽개쳐진 전동 킥보드. 정기홍 기자

전동 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는 연령이 만 13세 이상부터 허용됐다가 이번에 법 개정으로 다시 원동기장치면허(만 16세 이상) 이상의 면허 보유자로 제한했다. 급증하는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도입된 조치다.

개인형 이동장치는 보도에서 달릴 수 없고 자전거 전용도로나 차도의 맨오른쪽 차선을 이용해야 한다.

경찰은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한달 동안은 범칙금을 부과보다 법규를 준수하도록 계도하고 있다.

계도 기간이 지나면 헬멧을 쓰지 않으면 2만원, 보도 주행 3만원, 동승자와 함께 타면 5만원, 무면허 운전 시 10만원의 범칙금을 문다.

경찰이 단속 첫날인 13일 집계한 단속에서도 헬멧 미착용이나 보도 주행 등의 위반이 대부분이었다.

경찰은 이날 서울 홍대입구역, 여의도, 한강공원 등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을 많이 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1시간 30분 동안 단속 및 계도활동을 한 결과 다수의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한 지점에서만 78건의 규정 위반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19일에는 새벽 4시쯤 서울 강남 도로에서 전동 킥보드를 음주운전하던 20대 남성이 지나던 40대 여성을 들이받아 경찰에 붙잡혔다. 관련법이 강화됐지만 이 남성은 개의치 않은 것이다. 이전만 해도 음주운전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범칙금 3만원, 음주 측정을 거부해도 10만원만 물었다.

이 남성은 면허취소 수준(알콜농도 0.111%)의 만취 상태였다. 엉덩이 부위를 다친 피해자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이 남성에게 적용된 혐의는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혐의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사상)였다.

그런데 관련 법은 강화됐지만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 전동 킥보드 업체들은 아직 킥보드만 대여할 뿐 헬멧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전동 킥보드를 이용하려면 이용자가 직접 헬멧을 사야 한다. 따라서 헬멧을 쓰고 타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유 킥보드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10분 안팎으로 비교적 짧다. 예컨대 30분 이상씩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헬멧을 써야 한다는 인식이 낮다.

업체들과 경찰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어떻게 헬멧 착용을 유도할 지가 관건이다.

이용자가 스스로 헬멧을 착용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헬멧까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지는 지금 여건으로서는 부정적이다.

업체로서도 헬멧을 함께 대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 킥보드 업체가 지난해 대구에서 300개의 헬멧을 시범 비치했지만 200여개가 분실되고 50개가량은 재사용이 어려울 정도로 파손됐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유 자전거 ‘따릉이’도 지난 2018년 30곳의 대여소에 헬멧 1500개를 비치하고 이용자들이 착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용률이 3%대에 그쳤다.

공유 킥보드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헬멧을 대여해도 이용자들이 착용을 꺼리진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대안은 나오고 있다.

전동 킥보드 1대마다 헬멧을 걸어두고 대여하는 서비스 업체도 나왔다. 앱으로 이용 후 헬멧을 잠그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현재로서는 업체들이 분실이나 파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헬멧을 제공하는 가장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고려되고 있다.

또 다른 대안은 업계가 공동으로 지정 대여소를 마련해 이곳에 공유 킥보드와 헬멧을 함께 비치하는 방안이다. 일부 지자체가 업계와 함께 공동 대여지점을 시범도입한 예는 있다. 도보 위에 무질서하게 두고간 전동 킥보드를 한곳에 모을 수도 있다.

보다 진전된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현행 제한 속도를 더 낮추는 대신 보도 운행을 일부 허가하고 대신 헬멧 착용은 자율에 맡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도로교통법이 규정한 운행 속도를 시속 25㎞ 이하에서 10㎞대로 낮추자는 의견이다.

무엇보다도 자전거 동호회를 중심으로 최근 들어 헬멧 착용 비율이 훨씬 높아진다는 점에서 동호회를 헬멧 쓰는 문화를 이끌 지렛대로 삼을 필요성이 있다. 이는 주위에서 쓰면 자신도 쓰게 되는 행동의 전염이다. 교통안전 문화가 규제보다 시민 의식의 확산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한편 경찰의 계도가 시작되자 현장에서는 반응이 왔다. 관련 법 개정 이후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률은 뚝 떨어졌다.

서울을 포함 수도권에서 공유 전동 킥보드를 대여하는 업체 관계자는 “13일 이후 약 일주일간 데이터를 보면 권역에 따라 다르지만 매출 감소폭이 큰 곳은 이용률이 절반가량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이 개인형 이동장치 사용을 줄이는 쪽으로 반응한 것이다. 계도 한달 후 단속에 들어가면 이용을 자제할 공산이 더 커질 전망이다. 이는 업계의 고사 우려가 커진다는 의미다. 관계 당국이 대안을 속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형 이동장치 도입 대수는 2017년 9만 8000대, 2018년 16만 7000대, 2019년 19만 6000대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플랫폼뉴스 강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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